
연일 연고점을 경신하던 국내 증시가 정부의 세제개편안 실망감에 급락했다.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 강화와 배당소득 분리과세 세율 상향 등이 시장 기대를 크게 밑돌면서 투자자 반발이 거세지는 상황. 증권가에서는 개편안 조정 여부에 따라 향후 증시 흐름이 결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는 지난달말 3245.44에서 전날 종가 기준 3147.75로 3.01% 떨어졌다. 특히 코스피는 지난 1일 전 거래일 대비 3.88% 급락하면서 ‘블랙 프라이데이’ 장세를 시현했다. 당시 시가총액 100위권 종목 가운데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을 제외하면 모두 하락했다. 이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폭의 내림세다.
이같은 급락세는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31일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에는 △상장주식 대주주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 50억원→10억원 조정 △증권거래세율 0.15%→0.20% 인상 △법인세율 과세표준 구간별 1%p 상향 △배당소득 분리과세 35%(지방소득세 포함 38.5%) 등이 담겼다. 세 부담 확대와 기대치보다 낮은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이 악재로 작용한 셈이다.
이재원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급락세는) 세제개편안이 주원인으로 추정된다”라며 “대주주 양도세 기준이 재강화되고,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이 시장 기대치를 웃돌아 투자자들의 실망을 야기했다”고 분석했다.
투자자들은 세제개편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따르면 전날 오후 2시34분 기준 ‘대주주 양도소득세 하향 반대에 관한 청원’은 12만4611명이 동의했다. 해당 청원은 세제개편안 발표날인 31일 게재돼 나흘만인 3일 오후 7시쯤 10만명을 돌파했다.
청원인은 “양도소득세는 대주주가 회피하기 위해 연말에 팔면 그만인 회피 가능한 법안이다. 그만큼 세금 회피용 물량이 나오게 되면 (증시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라며 “연말마다 회피 물량이 쏟아지면, 코스피는 미국처럼 우상향할 수 없다. 다시 예전처럼 박스피, 테마만 남는 시장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충격으로 당분간 국내 증시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한다. 8월 코스피 밴드 전망치도 하향 조정하는 추세다. 특히 투자자들의 염원이었던 삼천피가 붕괴될 수 있다는 전망도 다수 나오고 있다. 다올투자증권은 이달 코스피 하단을 2970으로 제시했다. 키움증권도 하단을 2950으로 설정했다. 교보증권은 하단을 2900까지 대폭 낮췄다.
조병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는 시장의 눈높이를 하회하는 정책에 대한 실망감에 상당한 폭의 조정이 있었다”며 “세제개편안과 관련된 실망감은 시장 참여자들의 강한 불만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증시참여자 및 기업이 선호하지 않는 정책 도입 시도가 잡음을 만들어 낸 상황인 만큼, 적어도 이달 초는 기대감보다 실망감이 우위에 있는 국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준우 교보증권 연구원도 “8월 증시는 변동성 장세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여전한 트럼프 리스크와 국내 증시에 대한 단기 과열 해소 필요성 때문”이라며 “자산배분 관점에서 이달 국내 주식 비중을 축소하는 것이 유효할 것으로 판단한다”라고 분석했다.
다만 세제개편안에 대한 반발과 증시 조정이 이어질 경우 정책 변화가 예상된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가 국내 증시 활성화를 중점 경제 정책으로 선정한 만큼, 투자자 반발을 고려할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김종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세제개편안에 대한 여론 반발과 시장 하락이 지속되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조정될 가능성은 열려있다”라며 “법 개정이 여전히 주주친화적 방향으로 추진되는 점에서 세제안의 조정 여부가 향후 증시 방향성에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당 지도부 내에서 세제개편안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전날 SBS 라디오에서 “정부안이 아직 확정된 게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이라며 “시장을 이기는 정치나 행정은 없다. 시장과 개미 투자자의 염려 여론을 반영하고 의견을 수렴해 가장 적절한 결론을 도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