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공의들도 하반기 수련을 위해 돌아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는 1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간담회를 갖고 복귀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선출된 한성존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총리 면담을 시작으로 정부와 소통을 이어가며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월 시작된 갈등 이후 1년 5개월 만에 실질적인 해소의 실마리가 잡히고 있다.
정부 역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5월 전공의 추가 모집 뒤에 별다른 유화책은 내놓지 않았지만, 화해 국면이 조성되면서 전공의 복귀를 위한 새로운 특례가 검토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간 정부는 행정처분 철회, 수련 및 입영 특례 등을 통해 복귀를 유도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의 복귀를 마냥 반기지 않는 이들이 있다. 바로 환자들이다. 환자단체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면서 냉소를 담아냈다. 장기화된 의료공백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이들이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집단행동으로 인한 의료공백과 국민 피해에 대해 제대로 사과가 없었다는 점이 뼈아프다”고 지적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의료공백은 환자의 생명에 직격탄이 됐다. 치료·수술 지연, 응급실 뺑뺑이 등 피해가 잇따랐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한 ‘환자 피해신고·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2월19일부터 올해 2월18일까지 총 6260건의 환자 상담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933건은 피해신고서로 공식 접수됐으며, 사망 관련 신고도 21건에 달했다. 그러나 즉각 대응팀이 개입한 사례는 11건뿐이었다. 의료공백과의 직접적 인과관계가 입증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어 환자들의 불만이 커졌다.
의료 정상화를 향한 환자들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의정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지난해 6~7월, 상급종합병원이 무기한 휴업에 들어가자 10여개 환자단체는 거리로 나섰다. 기자회견에서는 “환자들은 죽어가고 있다. 병원은 4기 암환자를 호스피스로 내몰고 시급한 시술을 2차 병원으로 미루며 수술과 항암을 연기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의사들은 특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을 위협하고 무정부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부가 복귀 의사를 드러낸 의대생, 전공의에게 특혜를 주는 것을 환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갈등이 봉합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의대생들이 복귀를 선언했지만 현실적으로 바로 수업을 받긴 어렵다. 대개 학년제로 운영되는 대학은 1학기에 2학기 수업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유급 시 내년 3월에야 복학이 가능하다. 결국 복귀를 위해선 정부와 대학이 학사 유연화 등 특례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의사의 복귀는 의료 정상화를 위한 필수 전제이며, 기자 역시 이를 환영한다. 다만 그간 환자 곁에서 취재를 이어오면서 국민이 이 갈등 속에서 겪은 큰 상처를 실감했다. 물론 의료의 미래를 고민한 의대생과 전공의도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환자는 선택권 없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어야 했다. 환자들은 더 이상 의료공백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같은 사태로 다시 상처받을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환자단체는 의대생과 전공의가 돌아오기 전에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협상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다. 그들의 말을 살펴 정부는 ‘필수의료 공백방지법’을 안착시키고, 의료계는 환자 중심의 의료 개혁안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진정한 의료 정상화는 환자와 국민에게 전하는 진심 어린 사과로 첫걸음을 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