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찐 고액연봉자, 당신은 결국 우리다…연극 ‘살’

‘살’찐 고액연봉자, 당신은 결국 우리다…연극 ‘살’

기사승인 2011-03-23 03:50:00

[쿠키 문화]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남산예술센터가 2011 시즌 프로그램 개막작 ‘살’을 오는 4월 1일부터 4월 17일까지 새봄 무대에 선보인다.

‘신우는 환 딜러다. 고액 연봉에 그의 감각은 업계 최고로 불린다. 하지만 그는 고도비만에 만성 스트레스로 간수치가 위험할 정도로 높이 치솟아 있다. 공교롭게도 간암 말기인 어머니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간이식 수술뿐이다. 이식이 불가능한 신우는 죽을 힘을 다해 살을 빼지만 쉽지 않다. 그는 헤지펀드 탱고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헤지펀드 탱고는 엄청난 연봉을 제시하며 건강한 몸을 전제로 간이식 수술을 반대한다. 신우는 옛 연인이자 동료 안나와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논쟁을 벌이며 젊은 시절 ‘프로메테우스적 이상’을 지녔던 자신의 모습과 철저히 망가지고 비곗덩어리만 남은 현재 자신의 몸을 돌아보면서 다시 ‘프로메테우스적 질문’ 앞에 마주한다. 어머니와 연인과 동료와 직장과 돈, 모든 것을 다 잃은 신우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은 무엇일까?’

‘살’은 ‘돈 나고 사람 났다’는 물질만능과 ‘빨리, 빨리’의 속도경쟁, 실물경제를 대체한 금융자본주의, 승자독식의 냉혹한 생존게임이 만연한 우리의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고도비만이자 고액연봉자인 주인공 신우의 삶을 통해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충족되지 않는 결핍과 불안 속에서 사는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반추하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부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삶에 대한 총제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너 진흙쿠키 먹어본 적 있니? 얼마 전에 아이티 애들이 먹을 게 없어 진흙으로 만든 쿠키를 먹는 게 방송에 나오더라. 근데 나보고 옥수수로 연료 만드는 회사 주식을 사라고?”-극중 대사

‘살’의 아이디어는 아이티의 진흙쿠키로부터 시작됐다. 한쪽에선 폭식과 비만과 다이어트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선 기아와 가난 속에서 흙을 파먹어야 하는 세상이 기이하게 공존하고 있다. 작품은 진흙쿠키의 양극단에 우리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병치시켜 뜨겁고 목마른 ‘욕망의 불꽃’ 속에서 매일매일 지옥을 경험하는 우리의 모습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 잘 알고는 있지만 관심을 가지지 않는 문제에 대해 우직하고 정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곳에서 탐욕과 결핍과 중독을 강요받는 인간 프로메테우스들이 살아간다. ‘무한 속 도전’은 고통을, 고통은 피학을, 피학은 다시 가학을, 가학은 중독을, 중독은 탐욕을, 탐욕은 다시 고통을… 이 순환의 질주에서 인간 프로메테우스들은 끝없이 온몸으로 숨을 토해낸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적 질문 앞에 놓여진다”-연출노트

연출자는 동시대의 이런 삶의 조건을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환경이라고 진단하며 ‘인간 프로메테우스들’이 ‘프로메테우스적 질문’ 앞에 놓이게 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주제는 이 공연에 참여하는 디자이너들의 상상력도 자극했다. 깊은 밤에도 잠들 줄 모르고 인공의 괘락과 욕망에 둘러싸인 현대인들.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쉼없이 깜빡이는 모니터. ‘살’은 현대도시의 다양한 욕망의 모습들과 숨소리들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 혹은 어떻게 압축적으로 보여줄 것인가의 무대에 대한 고민도 돋보이는 작품이다. 남산예술센터 특유의 트러스트 무대의 개방감과 깊이감을 적극 활용한 실험정신이 시도될 무대 역시 공연 ‘살’의 특징 중 하나다.

이해성 작가의 신작 ‘살’은 2010 창작팩토리 대본공모 선정작으로, 심사위원들로부터 “희곡의 무대화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는 평을 받았다. 무대는 ‘해무’와 ‘길삼봉뎐’에서 성실하고 끈기 있는 힘의 무대를 보여준 안경모 연출이 맡았다. 주인공 신우역을 맡은 배우 김동완은 이 작품을 위해 실제로 몸 불리기에 나섰다. 19세 이상 관람가. 전석 2만5천원. ☎02-758-2150.

국민일보 쿠키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