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칼럼]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 부활

[쿠키칼럼]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 부활

기사승인 2010-11-10 14:13:00
[쿠키 정치] 고 김대중 전대통령은 재야시절 친여 매체로부터 ‘권위주의적’이라는 공격을 자주 받았다. 그의 지지자들은 김 전대통령을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오직 동교동계파에서 ‘선생님’은 DJ 한 사람 뿐이었다. 동교동 거실에 가면 DJ가 앉는 의자는 그 앞에 놓인 소파보다 높았다. 반 DJ성향의 기자들은 그것을 ‘권위주의적’인 것으로 보았다. 하루는 작심한 듯 동교동을 찾은 기자들에게 “권위와 권위주의적인 것은 다른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보고 높은 의자에 앉는다고 말하는데 옛날 교통사고 때 다친 고관절 때문에 낮은 의자에 앉으면 아프기 때문에 의자를 높여 앉는거요. 그게 권위주의적이라면 할 말이 없소”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 전대통령은 권위는 남이 인정하는 것이고 권위주의적인 것은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정의했다.

국회 사무처가 최근 의사당에 있는 엘리베이터 16대 중에 4대 옆에 ‘의원전용’이라는 표지판을 세우고 국회의원과 장차관급이 탈 수 있도록 했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정기국회 기간 중 의원, 정부 관계자, 민원인 등이 함께 몰리며 의원들이 회의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서 이런 조치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의원전용 엘리베이터는 지난 17대 국회인 2004년 9월 ‘권위주의 타파’를 내세우며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인 시절 의원 74명이 발의해 없앴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참여정부’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를 되돌아보면 ‘권위’는 낡고 거추장스럽고 시대에 뒤진 것으로 치부됐다. ‘혁신’이란 단어가 사회를 광풍처럼 휩쓸던 시대였다.

1975년 8월15일 준공돼 그해 9월22일부터 의사당으로 사용된 국회에는 붉은 카펫이 깔린 의원전용 엘리베이터가 4대 있었다. 취재에 바쁜 언론인들은 이 눈치 저 눈치 안보고 탔지만 국회 사무처 직원이나 일반인들은 그 엘리베이터에 타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 엘리베이터에는 ‘권위’가 실려 있었다. 지금도 국회의사당 현관문은 가운데 회전문이 있고 좌우로 밀고 닫는 2개의 유리문이 있다. 가운데 문에는 지금도 붉은 카펫이 깔려있고 의원과 장차관 등 고위 인사들만이 드나들 수 있도록 되어있다.

국회에 의원 전용엘리베이터가 생기자 ‘권위주의 부활’이라고 따지는 이들이 생겼다.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은 “구태의연하고 권위주의적인 정치에 환멸감을 느끼는 국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정치권과 국회가 몸을 낮추고 문턱을 없애도 모자란다”며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국회사무처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다. 권오을 국회 사무총장은 “의원들이 회의장에 가기위해 5∼10분씩 엘리베이터 앞에 기다리는 일이 많았다”고 부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주요 인사들에 대한 승강기 전용제는 선진국 의회는 물론 기업들도 이미 도입을 했다”고 덧붙였다.

기자도 의원전용 엘리베이터를 부활시킨 것은 옳다고 본다. 현 국회의원들이 존경받을 만한 인문들이라서 그들에게 전용엘리베이터를 내주자는 것이 아니다. 청원경찰법 개정안을 둘러싼 입법로비 추문, 지난 2월 전직 국회의원에게 평생 동안 월 120만원씩 지급하는 헌정회 육성법 개정안 처리를 통한 제 밥그릇 챙기기 등을 보면 그들이 누리고 있는 것을 더 빼앗고 싶은 마음이지만 이 사회에 권위는 필요하다. 국회의원들이 존경스러워서가 아니라 국민의 손으로 선출한 국민의 대표이고 그들이 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야기했듯이 ‘권위주의적’인 것은 나쁘지만 ‘권위’는 지켜져야 한다. 그게 성숙한 사회이고 전통이 있는 사회다. 미국처럼 사회질서가 엄격히 지켜지는 사회에서도 상하원 의원들은 의회 표결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Voting'이라는 스티커를 차에 붙이면 교통법규 위반을 묵인해 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권위‘가 붕괴되었다. 가정, 사회에서 연장자, 어른의 권위가 붕괴되었고, 직장과 군대에서 상사의 권위가 무너졌으며 대통령과 국회의원 ,고위공직자들, 심지어 성직자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광풍처럼 밀어닥친 우리 사회의 권위의 붕괴는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을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 면으로 바꿔놓았다. 사람들은 너도 하나 나도 하나를 가져야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평균적 평등만을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모 대학에 재직 중인 A모 교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같은 것은 같고
다른 것은 다르다고 인정하는 것이 평등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강렬 국장기자 [email protected]
이강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