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벌꿀 되고 ‘설탕’벌꿀 안 돼…양봉업계 “소비자 기만” 반발

‘천연’벌꿀 되고 ‘설탕’벌꿀 안 돼…양봉업계 “소비자 기만” 반발

식약처, 사양벌꿀·사양벌꿀집 외 벌꿀에 ‘천연’ 표기 추진
양봉업계 반발 “벌꿀 놔두고 사양벌꿀→설탕꿀 바꿔야”
“‘소비자 기만’ 해결 안돼…행정낭비·기존 양봉업자 피해”

기사승인 2025-06-20 11:00:04
경기 의왕시의 한 양봉원에서 꿀벌들이 벌통 근처를 날고 있다. 김건주 기자

정부가 꿀벌에게 설탕물을 먹여 생산한 ‘사양벌꿀’에 ‘설탕’ 문구를 표시하지 않고, 꽃에서 채취한 벌꿀에 ‘천연’ 문구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한 데 대해 양봉업계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20일 양봉업계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약처 공고 제2025-249호 ‘식품등의 부당한 표시 또는 광고의 내용 기준’ 일부개정고시(안)을 통해 사양벌꿀·사양벌집꿀을 제외한 벌꿀에 ‘천연’ 표시를 허용한다는 내용을 행정예고했다.

기존 벌꿀에 ‘천연’ 문구를 붙여 사양벌꿀과 차별점을 둔다는 것이다. 식약처는 “소비자에게 보다 정확한 식품 정보를 제공하고자 ‘천연·자연’ 표시·광고 규정을 재정비하는 것”이라고 개정 취지를 밝혔다. 사양벌꿀과 벌꿀(꽃꿀) 사이의 구분을 위해 벌꿀에만 ‘천연’ 문구 사용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봉업계는 강한 유감을 표하고 있다. 한국양봉협회를 비롯한 관련 단체들이 ‘사양벌꿀’ 명칭을 ‘설탕꿀’로 변경해달라는 공문을 식약처에 제출했음에도, 이번 개정안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양봉협회는 ‘사양벌꿀’이라는 명칭에 설탕이 들어가지 않아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국산 벌꿀 시장의 신뢰도를 낮춘다며 식약처에 ‘설탕꿀’로 변경을 촉구했다. 이에 식약처는 양봉협회의 의견을 받고 생산자협회·소비자단체 등 이해관계자들과 의견을 수렴해 명칭 변경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방안이 국산 벌꿀 시장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사양꿀로 신뢰를 잃은 국산 꿀 시장이 위축되는 사이, 관세 철폐가 예정된 저렴한 베트남산 꿀 등 외국산 꿀의 수입 규모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꿀 수입량은 2137.5톤(t) 규모로 전년(1424.5톤) 대비 700톤 이상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수출량은 8.5톤으로 전년(6.3톤) 대비 2.2톤 증가하는데 그쳤다.

김종화 한국양봉협회 부회장은 “사양벌꿀 명칭을 그대로 두는 것은 국산 벌꿀의 신뢰를 낮추는 것”이라며 “국내 양봉산업이 신뢰를 잃으면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지도 줄어든다”고 우려했다.

식품등의 부당한 표시 또는 광고의 내용 기준 일부개정고시(안). 식품의약품안전처

또한 기존 벌꿀에 ‘천연’ 표시가 추가될 경우,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벌꿀이 상대적으로 신뢰를 덜 받는 듯한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역차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송인택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 이사장은 “사양꿀 표기를 없애지 않고 굳이 ‘천연’벌꿀 표기를 새로 쓰게 하는 건 불필요한 행정 낭비”라며 “사양꿀 표기는 국민이 ‘설탕꿀’인지 몰라보도록 하는 표기다. 사양꿀 표기를 금지하라는 대다수 양봉인들의 뜻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사양꿀 표기를 고집하다가 2029년 관세 철폐로 꿀 시장이 개방되면 국내 양봉산업은 국제경쟁력을 상실하고 궤멸할 것”이라며 “이에 앞장선 정부와 공무원들이 책임을 질 수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일본에서는 사양 벌꿀을 식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국민이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사양벌꿀 명칭에 ‘설탕’을 넣도록 바꾸려 한다”고 발언한 것과도 궤를 달리한다. 

양봉업계는 각 기관과 부처 등을 대상으로 민원을 제기하며 반대 입장을 공식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김 부회장은 “국내 양봉산업 보호를 위해 사양벌꿀 명칭 변경과 관련해 정부에 민원을 넣을 계획”이라며 “양봉인들과 함께 노력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다만 식약처는 사양벌꿀 명칭 개정과 관련해 “설탕꿀로 변경을 요청한 양봉협회, 한봉협회, 양봉농협 등과 사양벌꿀 명칭 현행 유지를 원하는 다른 생산자단체 간 의견이 달라 합의된 명칭안을 제시하면 고시 개정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식약처는 다음달 29일까지 ‘천연’ 표시 허용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받을 예정이다.

김건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