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진료체계 ‘심각 단계’ 지속…의사 집단행동 대응 실효성 있나

비상진료체계 ‘심각 단계’ 지속…의사 집단행동 대응 실효성 있나

기사승인 2025-06-26 06:00:08 업데이트 2025-06-26 08:57:22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곽경근 기자

정부가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설정한 보건의료 재난 위기 경보가 1년 넘게 ‘심각’ 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증·응급 입원진료 지원과 응급의료체계 지속 등에 건강보험 재정과 각종 예산이 대규모로 투입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사태 해결은 요원한 상황이다. 일각에선 현 의료 상황과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할 때 비상진료체계를 이어가는 게 과연 실효적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26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년4개월 동안 의료공백 사태 수습에 들어간 건강보험 재정이 3조원을 넘으면서 재정 건전성 관련 우려가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2월 의과대학 입학 정원 2000명 증원 발표 후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병원을 이탈하자 보건의료 재난 위기경보를 최상위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했다. 중증·응급환자 진료를 유지하기 위해 비상진료 수가도 인상했다. 의료 수입이 급감한 전공의 수련병원엔 건강보험 급여를 선지급하는 등 막대한 재정 투입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복지부에서 받은 ‘의료공백 관련 건강보험 지원 현황’ 자료를 보면, 비상진료 조치에 지급된 건보 재정은 지난달까지 총 1조7290억원이다. 구체적으로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를 가산해 주기 위한 응급진료체계 유지에 3316억원, 경증환자의 상급종합병원 방문 자제를 유도하기 위한 경증환자 회송에 361억원이 각각 지원됐다. 중증·응급 입원진료 지원에는 8686억원이, 일반 입원진료 지원에는 4927억원이 각각 지급됐다. 수련병원에 들어간 선지급금은 총 1조4844억원으로, 지난해 6~8월 선지급된 금액 중 올 4~5월 정산된 금액은 3299억원이다.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건강보험은 4년 연속 흑자를 달성하며 30조원에 이르는 안정적 재정 운영을 이어가고 있지만, 중장기 재정 전망은 밝지 않다. 국회예산정책처의 ‘건강보험 재정 전망’에 따르면, 의정 갈등이 계속돼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할 경우 건강보험 누적 적자액은 1조7000억원 불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정책처는 2026년으로 예상된 적자 전환 시점이 의정 갈등 장기화 영향 때문에 올해로 앞당겨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의정갈등 1년 6개월째…환자 피해신고 80%↓

사태 해결은 요원하기만 하다. 정부는 전공의와 의대생 복귀를 유도하고자 그동안 수차례 특례 조치를 시행해왔다. 정부는 대한의학회, 대한수련병원협의회, 대한병원협회 등 수련 현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지난해 5월 전공의 추가 모집을 허용했다. 당시 대한수련병원협의회가 사직 전공의를 대상으로 복귀 의사를 조사한 결과 약 3000명이 의사가 있다고 답했지만, 추가 모집 결과 860명만 최종 합격하는 데 그쳤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전공의들 사이에서 “복귀 기회를 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실제 복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하반기(9월) 전공의 모집 시작인 7월 말까지 한 달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박효상 기자

재난 위기 경보 상향과 함께 구성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는 최근 몇 주째 서면으로 대체되고 있고, 별도자료도 배포되지 않는 상태다. 또 지역 중소병원들이 역할을 확대하고, 전담간호사(진료지원간호사)들은 전공의 공백을 메우며 혼란을 수습해가고 있어 환자 불편이 상당 부분 해소된 상태다.

복지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상담은 이달 1~19일 기준 127건으로, 하루 평균 6.7건이 접수된 셈이다. 전공의가 수련병원을 이탈한 직후였던 지난해 2월 19~29일은 총 783건의 상담이 접수됐다. 지난해 3월엔 1197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후 꾸준히 감소해 지난해 8월 278건으로 줄어 계속 300건대를 유지하다 지난해 12월 406건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선 2월이 334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지난달 상담 건수는 235건으로 지난해 3월 대비 80.3% 줄었다. 특히 피해사례 중 비교적 심각한 ‘수술 지연’의 경우 지난해 2월19~29일 256건에 달했으나, 지난달부터 이달 19일까지 0건에 머물렀다. 법률 상담도 지난해 3월 143건으로 최고치를 찍은 뒤 지난해 11월부터는 매월 0건을 기록 중이다.

건보 재정 건전성 ‘흔들’…“점진적으로 지원 줄여야”

전문가들은 비상진료체계 운영이 장기화될 경우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건강보험체계가 이미 고령화와 의료 이용 증가로 구조적 한계에 직면한 상황에서 수천억원의 재정이 지속적으로 소모될 경우 미래 세대의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상진료체계의 단계적 전환이나 새로운 형태의 중재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커진다.

이은혜 순천향대부천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중대본 운영은 진즉 접었어야 했다. 회의를 서면으로 대체하는 것 자체가 ‘중대본 무용론’을 뜻하며 그런 의미에서 ‘심각 단계’도 당연히 해지해야 한다”며 “정권이 바뀌면서 부처 장·차관들이 대거 교체될 예정인데 중대본이 제대로 일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복지부와 교육부 장·차관 인사를 빨리 마무리하고 의대생이 내년에 복귀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곽경근 기자

박종훈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비상치료체계 유지와 건강보험 재정 지원은 전공의 이탈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당장 중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막대한 재정 지원이 이뤄지다 보니 일부 병원이 이를 기회 삼아 근본적 의료 문제 개선보다는 기존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지원이 계속되니 굳이 개혁할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결국 병원 구조조정이나 중증질환 중심 진료체계로의 전환 같은 궁극적 개선을 외면하게 될 것”이라며 “지금처럼 계속 퍼주는 방식은 의료 시스템의 개혁을 지연시키는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자원 지원이 아니라, 병원들이 자구책을 세우고 시스템을 정비할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라며 “그 사이 정부는 수가 조정, 보상체계 개편 등 정책 추진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국장은 “상급종합병원 진료가 경증환자 대신 중증환자 중심으로 바뀌며 수익 구조에 변화가 생기고 있고 환자 병원 이용 흐름도 달라지고 있다”면서 건강보험 재정 투입이 의료체계 개편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고 짚었다. 남 국장은 “비상진료체계를 당장 중단하면 의료기관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고, 현 체계를 무기한 이어가는 것도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서 “전공의 복귀 시점, 환자 불편, 병원 수익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점진적으로 지원을 줄여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