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행정부 1기에서 촉발된 미국과 유럽 간 정치적 불신은 바이든 행정부의 다양한 전략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못했다. 유럽은 미국의 국내 정치적 변화 및 대외 정책의 변화가 유럽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 지역내 정치적 연대를 지속적으로 강화시켜왔다. 이 같은 움직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더욱 가속화되어, 정치, 경제, 군사, 그리고 방산분야에 이르기까지 유럽연합 차원의 집단적 움직임이 성숙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안보 전략 및 대응책 마련에 있어 미국과 유럽 간 불확실성이 더욱 가중될 것이고 이 같은 변수에 미국은 동맹국들의 국방비 증액 압박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주장하는 국내총생산(GDP) 5% 수준으로 우리나라가 국방비를 증액할 경우 현재 규모의 2배로 증액시켜야 한다. 2025년 기준 국방비는 약61조원으로 올해 국내총생산의 2.3% 수준이다. 2010년 국방비가 약29조원 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 수치상 국방 예산이 2배로 증가하는데 15년이 걸렸다. 국가 재정 운용 측면에서 단기간내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한편, 유럽 및 아시아 지역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방비 비중을 살펴보면, 영국(2.3%), 프랑스(2.1%), 호주(1.9%), 일본(1.2%) 등이고 미국은 3.3%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2.3% 비중이 낮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글로벌 안보태세 유지를 위해 지출하는 비용을 제외하고 미국 본토 방어를 위한 지출만 고려한다면 국내총생산 대비 국방비 수준은 더 낮을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국방비를 증액시켜 미국이 지출하는 국방비가 축소되어 미국의 안보 국익이 증진될지는 미지수이고 어쩌면 트럼프 대통령의 희망사항에 불과할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비 증액 압박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는 보다 철저한 국내 자구책을 우선적으로 마련하고 미국과의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방위비분담금 인상률을 상호연관성이 떨어지는 국방비 증가율에 연동시켰던 실책을 반복해선 안 될 것이다. 또한, 미국 동맹국들의 전략적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캐나다는 최근 국방 및 안보 전략 발표를 통해 현재 국내총생산 대비 1.4% 수준의 국방비를 2% 수준으로 현재 회계년도 중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캐나다 총리는 국방비 지출의 4분의 3을 자치하는 무기 구매 대금이 미국에 지급되고 있는데 이를 축소할 것이며 유럽 동맹국들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시킬 것이다고 강조했다. 캐나다는 미국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면서도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했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여 국방비를 증액시키더라도 국가 재정 운용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국방비 지출에 있어 혁신적인 정책적 결단을 선제적으로 내려야 한다. 한반도 분단이라는 특수성으로 국방비 집행이 타 부처에 비해 국민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여도가 매우 낮고 예산 편성 및 집행의 ‘합목적성’ 역시 많이 부족하다. 최우선적으로 대대적인 국방 분야의 민간 아웃소싱 등을 포함해 국방비 집행이 보다 직접적으로 민간경제로 흡수되는 선순환 구조를 조성 및 확대시켜야 할 것이다. 추가적으로, 예산 합목적성 개선을 위해선 국방 분야의 특수성 장벽을 최대한 낮추고 타 부처와 중복되는 예산에 대해선 과감한 삭감 및 조정이 절실하다. 한편, 일본, 호주 등과의 전략적 소통과 연대를 강화시켜 인도 및 태평양 지역의 안보 불안 요소 관리를 위한 추가적인 예산 지출 규모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대응해야 할 것이다.
박진호 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