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화순 두메산골 쌍봉리에서 조부모와 몸이 편찮으신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어린 동생들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삼성전자 양향자(47) 상무는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시골 소녀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입학원서 마감을 하루 앞둔 날 생각지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아버지로부터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 동생들을 잘 돌봐 달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16세 소녀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양 상무와 아버지의 첫 약속이었다.
결국 넉넉지 않은 집안형편 때문에 실업계 고교(광주여상)에 진학한 양 상무는 1986년 졸업 뒤 연구보조원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입사 이후 양 상무는 자신과 “끊임없이 배우자”는 약속을 했다. 그는 반도체 회로를 도면에 그리는 단순 작업을 하면서도 늘 ‘공부하고 싶다’ ‘저걸 알아야만 하는데…’라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지 못했다. 주위의 고수(高手)를 찾아 끊임없이 묻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이해할 때까지 익혔다.
노력을 눈여겨본 선배들이 하나 둘 도와주기 시작했다. 95년 사내대학에서 학사학위를, 2008년 성균관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8년간 반도체 메모리설계라는 한우물을 판 끝에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됐다. 삼성의 별이라는 임원 자리는 덤으로 따라왔다.
양 상무는 14일 충남대 정심화홀에서 열린 삼성토크콘서트 ‘열정락(樂)서’에서 고졸 출신 연구보조원으로 일하다 삼성전자 임원까지 오르게 된 인생 스토리를 학생들에게 담담히 전했다. 그는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갖고 남들을 부러워하는 친구가 아닌 모두가 부러워하는 친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